기쁨의 사람, 하늘평강님…

날마다 영성일기를 쓰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열심냈지만 늘 곤고했던 저에게 하나님은 신비하고 경이로운 말씀을 먹어주고 계십니다.
또 날마다 간증을 쓰면서도 평강이 없던 저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떡을 풍성하게 먹여주고 계시구요.
그분이 제 삶에 왕이 되신적이 없었으니 사사기 말씀처럼 제 갈 길로 간 것이였어요.

아버지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저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눈을 떠서 쳐다보게 하시니 모든 것이 밝히 보입니다!

예수께서 그 소경의 손을 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그를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
무엇이 혹시 그에게 보이는지 물으시니 그가 우러러보며 말하되 “사람들이 보이는데 나무처럼 걸어 다닙니다’ 하거늘
이에 다시 그 눈에 손을 대시고 저로 쳐다 보게하시니, 저가 나아서 보는 것을 밝히 보는지라. 막 8:23-25

저는 육신의 눈은 떴으나 소경이였고 육신의 귀는 열렸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 보에 싸아 구유에 누인 아기를 너희가 보리라” 하더니…눅 2:11-12

일년에 한번 성탄절이 되면 늘 듣게 되는 이 말씀이 사실은 무슨 말씀인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뿌리이신 영존하신 아버지가 한 아들로 오신 것이 사도들이 예언했던 그 복음의 성취라는 것과
오시겠다고 하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표적이 된다는 것을 알리가 없었습니다.
들어본바도 없고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니까요.

이사야서 9장 6절 말씀도 어쩌다가 듣는 말씀인지라 큰 의미를 두지도 않았습니다.
일년내내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들을 수 없었고 성탄절이 되어야 스쳐지나가듯 들은 그 말씀이 제게 무슨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없이 죽도록 충성하고 싶었고 힘을 다해 모든 열심을 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렇게 살던 저에게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요 사람에게는 기쁨이로다” 하니라. 눅 2:4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은 영성일기와 간증을 매일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 알게 되었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가 누구신지, 표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니 저도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더군요.
내 감정, 내 기분에 따라 변하는 그런 기쁨이 아니라 기쁨의 근원인 아버지를 아는 것이 기쁨이였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니라.
사실, 저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들은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새길수도 없었습니다. 뭐가 뭔지 알아야 새기든지 말든지 할테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제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 뿌리되신 하나님이 그 아들로 오셔서 나를 위해 죽고 부활하셨구나! 라는 사실을 보는 것입니다.
기쁨도 평강도 없이 고아처럼 이 땅을 여기저기 헤메던 저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네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또 저희를 알고 저희는 또한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 싶었는데 이제 그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마음에 믿어 그분의 양이 되었으니까요.

저를 위해 선한 목자가 되셔서 목숨을 내어주시고 부활생명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열으신 아버지 하나님,
그 하나님을 정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며 경배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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