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 2:1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나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했음이니라. 고후 11:2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여
네 대속주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요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 54:5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모두 중매쟁이였습니다.
한 분 하나님이신 남편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중매쟁이였지요.
만약에 선지자들이 전하는 남편과 사도들이 전하는 남편이 서로 다른 남편이라면 문제가 매우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저는 여호와가 사람되신 하나님이 예수님인 줄 모를 때는 이 남편 저 남편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답니다.
여호와도 남편, 예수도 남편인데 여호와는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쓰여있어도 왜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이 남편이여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디 그것만 몰랐을까요…내가 그니라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그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를 알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왜 모세의 글이 예수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인지,
왜 그 아들에게 입맞추지 않으면 망하는 것인지,
왜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영존하신 아버지가 되셔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나름대로 힘내어 읽었습니다.
힘을 내어 성경을 읽는다고 그 복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였는데도 말입니다.
육신의 소경이 열심히 한다고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영적인 소경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못한 채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투표로 결정해서 알려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였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내가 갈께! 하시는 말씀이였고 신약은 내가 왔어! 하시는 말씀이였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한 분 하나님,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
그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죽고 부활하신 것을 모르고도 나름대로 뭔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종교생활에 빠져서 허덕였음에도 그 때는 소경이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밝히 압니다.
하나님은 세 분이 한 분 되신 것이 아니라 그냥 태초부터 한 분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그분이 그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영존하신 아버지가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지신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였다는 것을…
저도 남편이 누군지 모르고 자기가 주인되어 사는 사람들에게 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그들을 인도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나니…말했던 것처럼요.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오신 우리의 창조주,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