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산에서 친히 보이시리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나는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태움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니 이삭이 그 부친 아브라함을 불러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이삭이 묻되 “보소서,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태움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하되 “내 아들아, 태움제에 쓸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시리라” 하고
그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보라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태움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니,
오늘까지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친히 보이시리라” 하더라. 창 22:5-1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믿음이 어떻게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는지 또 그의 믿음이
어떻게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는지를 네가 보지 못하느냐?

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한 ‘하나님의 친구’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지 믿음만으로는 아니니라.
이와 같이 기생 라합 역시 사자들을 맞아들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도,
저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 없는 믿음도 또한 죽은 것이니라. 약 2:21-26

아브라함은 자식을 태움제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경배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경배의 본질을 배웁니다.
경배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도 함께 가는 것임을…
그 행위를 아브라함은 경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아브라함을 비유로 들면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 없는 믿음도 또한 죽은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 엄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삭을 태움제로 드릴 마음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이 그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야고보는 행위는 없고 믿음만을 떠드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인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 약 2:20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을 소리쳐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야고보는
아아 어리석은 사람아,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지 않지 않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그러므로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19

아브라함의 열매는 독자를 태움제로 드리는 자리까지 갔던 믿음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태움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본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태움제에 쓸 어린양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시리라.

그는 여호와의 산에서 친히 보이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산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산입니다.

그 복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여호와의 산에서 나무에 달려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신비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비라고 외친 것입니다.
어떻게 창조주 전능자 여호와께서 친히 사람되어 오신단 말입니까…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불가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또 이렇게 외쳤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기이하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1 thought on “여호와의 산에서 친히 보이시리라.”

  1. 아멘아멘! !
    그 믿음은 행함이 반드시 따라오는 믿음입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따라오는 믿음이네요. 여호와 하나님을 상천하지에 홀로 한 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그 믿음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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