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부터 있던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로, 우리 눈으로 본 바요,
우리가 주목하였고 또한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되어 우리가 이 영원한 생명을 보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하는 것은 너희도 또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이 사귐은 참으로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요.
우리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1서 1-4
제가 거의 쉬지않고 외치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22장 16절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교회들에게 알리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다면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이 주님이 전하고 싶으신 것과 다르지는 않겠지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
그분이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라는 의미인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영존하신 아버지인데 한 아기, 한 아들로 갔어…라는 말씀을 교회들에게 알리고 싶으신 것이지요.
구약에 등장하시는 하나님과 신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께 이렇게 대꾸합니다.
어,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아니 어떻게 뿌리가 자손이 된단 말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양태론자시군요! ㅉㅉㅉ….
주님은 한 순간에 양태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뿌리되신 분이 자손이 되신거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집니다.
자기들이 정해놓은 그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가 누구신지 고민한 적도 없고 머리를 싸매고 투표를 해서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존하신 아버지가 한 아기로 오셔서 죽고 부활하셨구나! 라는 사실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면서 우리가 투표해서 예수가 누구신지 정의를 내리자 떠들던 무리들에게
주님은 양태론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호하게 이런 말씀을 미리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또한 알았으리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그를 보았느니라. 요 1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너희가 하나님게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요 8:17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도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나,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 8:19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 8:24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인 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서 죽습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