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고
모든 일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에베소서 5:19-21

저는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몰랐습니다.
평생 교회당을 다녔어도 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교회는 성경적으로 이래야 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막연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이지요.
어마 어마한 사람들이 교회당에 모이지만 그 곳에서 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들을 수 없었고
저 또한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큰 기대를 하면서 교회당을 들어가지만 교회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나 교회당 밖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큰 기대를 했던 마음 한켠은 늘 실망으로 채워지는 일을 반복하며 수많은 세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요.
요즘 제가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오직 그 복음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경외하는 사람들이 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요즘 시가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삽니다.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고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피차 복종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이 신비듯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삶도 신비합니다.
한번도 이런 삶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이렇게 풍성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주일이 기다려지고 목사님의 말씀 선포가 짧은게 싫고 길게 길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이 너무나 금새 지나가고 목사님 말씀이 끝나면 벌써 다 하셨나 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그리고 지체들과 그 복음 안에서의 교제는 어찌나 풍성함이 넘치는지..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날마다 시가와 찬미를 함께 나누니 정말 감격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신 영존하신 아버지께 찬송을 드립니다.
어리석고 무지한 저를 부르시고 거룩케 하시고 의롭다 하신 영원한 왕 대주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날마다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전에는 습관적으로 불렀던 그 하나님 아버지가 지금은 제 눈앞에 계신 것 같이 느껴집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외친 그 외침이 저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주 예수여! 대주재시여!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불러 “대주재시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9-60

모태신앙 67년 만에 주 예수가 대주재이심을 마음에 믿게되어 영광입니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그분을 만나고 나서야 거룩한 예배자의 삶을 살고 있네요.
대주재 예수 그리스도, 이제 곧 오실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대주재 하나님 곧 전능자시여, 우리가 감사를 드리옵나니 이는 주께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으로
큰 권능을 가지고 친히 통치하심이니이다. 요한계시록 11:17

아멘!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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