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이르시되 그분을 책하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어다” 하시니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되
“보옵소서, 나는 사악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번 말하였사오나 대답지 아니하겠고 두번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나이다” 하니라. 욥 40:1-5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되 “주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너무나 기이하여 알 수도 없었던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묻겠사오니 주는 저로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 욥 42:1-6
하나님께 대하여 귀로만 들어도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크게 이야기했고
욥의 고난에 대해서도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나님 운운하면서 결론을 내려주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욥과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들의 의로움에 깊이 취해있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대속주가 훗날에 땅에 서실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땅에 오실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굳게 붙잡고 있던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이였습니다.
친구들과의 뜨거운 공방전이 끝나고 하나님이 욥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욥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말에게 힘을 주었느냐?
네가 그 목을 천둥소리로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할 수 있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에 의함이냐? 욥 39:19,27
자신의 의로 가득했던 욥이 하나님의 물음에 하나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 같아도 결국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앞에 서게되면 자신의 의로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욥처럼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다 부활의 주를 만난 바울이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좆은 것이 아니니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순종치 아니한 것이라. 롬 10:2-3
그렇게 의롭다고 스스로를 내세우던 욥도 그분을 친히 뵈옵고 하는 말이
나는 사악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고백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한다해도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모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라고 외쳐도 자신의 의로움으로 가득하면
하나님의 의로움이 머리로만 깨달아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탓하며 자신의 의로움으로 충만하던 욥이 하늘의 광채가 비춰질 때
자신의 사악함을 보았듯이 오늘도 욥처럼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자신의 의로움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어 종교적인 열심에
취해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지 아냐고…
여호와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지요.
이 기이하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의를 오늘도 누군가 깨닫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