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지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하시니라.. 출 31:16-17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는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였습니다.
그가 한 아기, 한 아들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기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빛이신 그 하나님이 오셨는데 어둠이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는 지금은 한 아들로 오신 여호와 하나님을 금새 알아볼까요?
뿌리이신 분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면 역시나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요한은 육신을 입고 오신 그분의 영광을 보고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는 것을 믿은 것이지요.
지난주에 집사님 한 분이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읽는데 완전 다른 책으로 읽혀진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 얘기를 마음에 담고 출애굽기를 더 자세히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구약을 읽을 때에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면 음~~뭐 당연한거 아닌가? 이러면서 읽습니다.
신약을 읽을 때에 역시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면…당연히 그렇지…이러면서 읽구요.
그러나 저는 그분이 같은 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만 보였습니다. 27절은 그냥 획~~하고 넘어갔구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거봐, 우리라고 했으니까 삼위의 하나님 맞잖아…
사람들에게 무서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 머리에 입력되면 무조건 생각없이 믿는 습관입니다.
그 습관이 성경을 읽을 때도 저를 소경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6장만 보이고 27장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그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우리가 전에도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가 있을지어다! 갈 1:8-9
바울은 지금도 이 땅의 모든 교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가 있을지어다!
내가 지금 선포하는 것은 바울이 선포한 “그 복음” 일까요?
만약에 다르다면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