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친구에게
내가 다시 돌아가길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
선교사님의 칼날같이 예리한 말씀이 내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맞다! 맞다! 하나님이 주신 생수를 마신 자는 사망의 늪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어둠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수시로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낙심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부르는 주가 누구신지도 모른 채 종교적 열심으로
내 의를 쌓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삶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만약에 누구든 다시 돌아간다면 그것은 상천하지의 홀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을 만났다면 어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지난주, 나는 예전에 다녔던 교회 분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나는 그 복음을 선포했다.
전에는 증거도 없이 막연한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활의 여려움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삶을 살았다고,
내가 가졌던 믿음은 어려움이 찾아 올 때마다 낙심하는 믿음이였다고,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믿음이 아니라고,
나는 내 감정과 느낌을 따라 종교생활을 한거라고,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읽다보니 내가 믿은 하나님은 성경에 없었다고,
성경은 다윗의 뿌리가 자손되신 한 분 하나님이셨다고,
그 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믿을만한 부활의 증거를 주신거라고,
그 분들은 동시에 나를 비웃으며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다 아니까 말하지 말어….듣기 싫어…또 그 소리야?
그 분들은 그 복음 들은 것이 화가 났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가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게 들린 그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며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복음 밖에서는 자신들의 종교적 열심은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참 자유함이 없고 눌리고 갇히고 사망에 메여 살 수 밖에 없는 삶이다.
사망의 올무에서 나를 건지신 영존하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감정과 느낌따라 가는 길이 아니고 진리와 거룩을 좆아 가는 삶을 살게 하신
나의 주님께 영원토록 영광과 경배를 드린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역시 보고 또한 기뻐하였느니라.
” 이에 유대인들이 그에게 묻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정말 네가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이에 저희가 돌을 들어 그를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피하여 즉시 성전을 떠나
그들 사이를 지나서 밖으로 나가시니라. 요 8:56-59
예전에는 이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뿌리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지셔서 하신 말씀으로 들린다.
내가 창조의 근본이야…내가 그니라…내가 너희들의 아버지야…그런데 너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오늘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영존하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게는 어떻게 그 복음이 들린 것일까?
생각할수록 감사 감사 뿐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