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자의 음성만 들린다.

그 복음을 선포하다보면 사람들이 자신들은 소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잘 본다고 말한다.
그러니 더이상 그 복음을 선포하지 말라고 한다.
뭘 그렇게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냐고 한다.
나도 알아, 너보다 내가 더 잘아, 내가 얼마나 큰 일을 한 사람인 줄 알아?
나는 제자훈련도 받았고 구제도 했고 십일조도 잘 하고 있으며 목사님도 잘 섬기고
이웃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선교도 하고 있다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나는 요한복음 말씀이 생각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그때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예수께 말하되 “설마 우리도 소경이란 말은 아니겠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이제 너희가 본다 하니 참으로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 9:39-41

사람들은 왜 자꾸 부활 부활 하냐고, 왜 자꾸 다윗의 뿌리와 자손 얘기를 하냐고,
왜 여호와가 사람되신 분이 예수라고 하냐면서 그만 얘기하라고 한다.
다른 얘기는 잘 하면서 내가 그 복음을 선포하려고 하면 바쁘다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복음 설교를 듣기 원하지 않으니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혹시 이단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 복음이 들리기 전까지 목사님 설교를 계속 들으면서도 목사님이
왜 반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뿌리와 자손되신다고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목사님은 왜 생활의 지침을 얘기하지 않으시지?
목사님은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거지?
왜 삶의 방향은 말해주지 않고 다윗의 뿌리와 자손 이야기를 쉬지않고 하실까?
목사님이 부활 얘기만 하셨으면 좋겠다…이런 생각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왜 그렇게도 다윗의 뿌리와 자손 이야기를 쉬지않고 하시는지 깨닫게 되자
한 순간에 나는 그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목사님이 끝없이 그 얘기를 하신 이유를 알게되고 나도 깨닫게되자
나도 누구를 만나든지 그 얘기를 계속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눈을 떴다.
소경이 눈을 떴다.
눈을 뜨고보니 그 분이 보였다.
뿌리가 자손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였고 한 아기로 오신 영존하신 아버지가 보였다.
그 때부터 나는 말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뿌리이신 하나님을 만났고 자손이신 나의 대속주를 만났다.
한분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그 사랑을 알게되자 나는 그 복음이 전부가 되었다.
내 인생은 완전히 새롭게 되었으며 나는 오직 하늘 나라만 바라보는 자가 되었다. 할렐루야!!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그들을 인도하여 내느니라. 또한 그가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그를 따르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 10:2-5

나는 이제 타인의 음성은 듣지 못한다.
나는 목자의 음성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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